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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풍요의 그늘에 가려진 혁신의 민낯: 인간을 향한 과학·기술·혁신(STI)을 꿈꾼다

person ESG국가정책연구소 calendar_today 2026.10.03 11:57 visibility 조회 13

인공지능 시대, 인류는 유례없는 기술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빛나는 혁신의 장막 뒤에서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거대하게 팽창하는 이 기술은 과연 누구를 향해 흐르고 있는가. 지난 달 뉴욕 유엔(UN) 본부에서 막을 내린 제11차 과학·기술·혁신(STI) 포럼은 이 묵직한 물음을 국제사회의 한복판에 던졌다.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는지'에 달려 있다는 뼈아픈 성찰이다.

오늘날의 인공지능(AI)은 넘쳐나는 데이터와 든든한 전력망이라는 '풍요'를 전제로 태어난다. 하지만 세상의 절반은 여전히 전기가 끊기고 마실 물조차 부족한 '결핍' 속에 살아간다. 완벽한 환경에서 질병의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도록 훈련된 최첨단 의료 AI 모델이라 할지라도, 전력 공급이 끊기고 종이 차트에 의존하는 아프리카의 작은 시골 진료소에 도달하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기술의 과학적 근거가 틀려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들의 척박한 현실과 제약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지 않은, 공감이 결여된 설계의 한계다.

불평등의 지표는 숫자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마쓰오카 사토시 센터장이 지적했듯, 현재 전 세계 AI 투자의 65%는 미국과 중국 단 두 나라가 독식하고 있다. 반면,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이 품고 있는 데이터 센터의 용량은 전 세계의 1%에 불과하다. 각국이 국수주의적인 '소버린 AI(Sovereign AI)' 구축에만 매몰된다면, 기술은 결국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파는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소수만을 위해 복무하는 기술은 결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이러한 분절의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 외교(Science Diplomacy)'다. 로베르트 데이크흐라프(Robbert Dijkgraaf) 국제과학회 차기 회장의 비유처럼, 정치와 외교가 흙탕물이 튀는 지정학적 극장의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다면, 과학자들은 두 번째 줄에서 정치적 변동성을 뛰어넘는 굳건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과 대학, 시민사회와 정부가 촘촘히 엮이는 '4중 나선 모델(Quadruple-helix model)'을 통해 지식의 파편화를 막고 글로벌 공유지(Global Commons)로서의 기술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록 바하두르 타파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의 지적처럼, 세상을 바꿀 기술적 해법은 이미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이제는 막대한 전력과 통신망을 전제로 한 '부유한 사람들만의 혁신'을 넘어, 현장에 뿌리내릴 구체적인 대안을 실행해야 할 때다.

첫째, 거대 자본이 독점한 AI 원천 기술과 인프라를 '디지털 공공재'로 개방하고 공유하는 국제적 합의가 시급하다. 둘째, 화려한 최신 기술 경쟁에서 벗어나 저전력 환경에서도 구동되는 '경량화 알고리즘'이나 오프라인 기반의 데이터 처리 등 현장 맞춤형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 개발에 공적개발원조(ODA)와 연구 기금을 집중해야 한다. 기술이 자본의 크기를 과시하는 사치품에 머물지 않고, 척박한 땅에 선 이들의 생존을 돕는 '일상의 강력한 무기'가 될 때, 인공지능은 비로소 인류를 위한 위대한 유산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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