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우 칼럼] 지구 타이타닉호, 빙산이 보이는데도 인류는 '가속 페달'
네팔에 이어 안데스까지,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이 심상치 않다. 이제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예고편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시대의 현실이 됐다.
지난 8월 26일 네팔에서는 빙하와 관련된 대규모 붕괴와 급류가 발생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당시 산사태와 홍수가 약 100㎞를 이동했으며, 최초 붕괴가 규모 5.2 지진에 상당하는 에너지를 발생시켰다고 분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주택과 도로, 교량, 의료시설과 수력발전 기반시설까지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을 하나의 우연한 자연재해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가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11년이었다고 밝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현재의 정책이 지속된다면 금세기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약 2.8℃ 높아지는 경로에 놓여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기후변화 자체가 아니다. 경고에 익숙해져 가는 ‘인간의 무감각’이다.
폭염이 찾아오면 에어컨을 더 세게 켜고, 홍수가 나면 더 높은 제방을 쌓으며, 산불이 나면 더 많은 소방장비를 투입한다. 물론 모두 필요한 대응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왜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가.
환경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의 인류는 마치 자신이 말기암 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환자와 닮아있다.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하다. 진단 결과를 받아들고도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는 환자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빨리 이동하고, 더 많이 버리는 삶이 무한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세계경제의 기본 문법은 여전히 ‘더 많이’이다. 기업은 더 성장해야 하고, 국가는 더 높은 GDP를 달성해야 하며, 개인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류가 만든 문명이라는 전차는 그래서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있다.
여기서 ESG의 본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ESG는 기업의 평가등급을 높이는 기술도 아니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멋지게 만드는 작업도 아니다.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고 몇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ESG의 본질은 간단하다.
“우리는 어디까지 욕망해도 되는가?”
이 질문을 기업과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던지는 것이 ESG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욕망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문명은 욕망을 동력으로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욕망의 제거가 아니라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더 큰 자동차를 갖고 싶은 욕망을 더 깨끗한 이동수단을 선택하는 욕망으로,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더 좋은 경험과 관계를 추구하는 욕망으로, 기업의 무한한 이윤추구를 지속가능한 혁신과 사회적 신뢰를 얻으려는 경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이제 ESG도 ‘착하게 살자’는 도덕적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면서도 지구를 파괴하지 않도록 제도와 시장의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
탄소를 많이 배출할수록 비용을 지불하게 하고, 자원을 순환시키는 기업이 더 큰 이익을 얻도록 하며, 친환경 기술과 재생에너지에 자본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도시계획·교통·건축·에너지·폐기물·공공조달 정책을 지속가능성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시민 역시 소비자가 아니라 이러한 전환을 선택하고 감시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욕망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회가 아니라, 파괴적인 욕망에는 브레이크를 걸고 지속가능한 욕망에는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사회이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것은 빙산이 존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충분히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늘의 우리에게 강렬한 은유를 남긴다.
지금 우리가 탄 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우리는 빙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네팔의 무너지는 빙하도, 안데스의 변해가는 산맥도, 세계 곳곳의 폭염과 홍수와 산불도 이미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UNEP는 1.5℃ 목표를 향한 길이 급격히 좁아지고 있으며, 기후위험을 줄이기 위해 훨씬 빠르고 큰 폭의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경고가 아니다.
브레이크를 밟는 결단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에는 일등석도 삼등석도 없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도, 보수와 진보도, 기업가와 노동자도 결국 하나의 지구에 타고 있다. 배가 침몰하면 누구도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지구가 인간을 심판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인간 자신을 심판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빙산과 충돌하기 전이라면, 우리에게는 선택할 시간이 남아 있다.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바꾸고, 함께 살아갈 새로운 항로를 찾아야 한다.
지구를 구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욕망보다 지혜가 먼저 작동하는 문명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브레이크 없는 전차를 멈춰 세우고, 우리가 함께 타고 있는 ‘지구 타이타닉호’를 구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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