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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언 우석대 교수의 ESG 시대⑩] 글로벌 가치사슬 규범, 공급망 인권 실사의 파고를 넘다

person ESG국가정책연구소 calendar_today 2026.10.03 11:00 visibility 조회 11

한국 특유의 견고한 원·하청 다단계 도급 구조는 단순히 대기업이 하청 단가를 낮춰 경제적 이윤을 남기는 수단을 넘어선다. 그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치명적인 물리적·화학적 위험을 기업 생태계의 가장 권력 없는 밑바닥으로 끝없이 침전시키는 가혹한 ‘위험의 퇴적 작용(Risk Sedimentation)’을 일으킨다. 

번듯한 사옥에 자리한 원청 대기업은 가장 유해하고 위험한 공정을 무자비하게 외주화하며 장부상의 안전 지표를 깨끗하게 세탁한다. 영국 노동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통찰했듯, 언제든 손쉽게 대체 가능한 불안정 노동 계급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양산은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이 사각지대 속에서 하청 및 이주 노동자들은 위험에 상시 노출되면서도 정당한 보호와 목소리를 박탈당한 채 존재한다. 

이러한 모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글로벌 무역 질서는 인권과 환경을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 강제하는 경성법(Hard Law) 체계로 빠르게 개편되고 있다. 그 정점에 서 있는 규범이 바로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EU CSDDD)’이다. 

본 지침은 원청 기업에게 자사 및 자회사뿐만 아니라 가치사슬 전체(상류 및 하류 사업 파트너)에서 발생하는 인권·환경적 부정적 영향을 식별, 예방, 완화, 시정할 법적 의무를 엄격히 부과한다.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액의 최대 3%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과징금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귀속된다. 이는 자본의 성장이 모두를 위한 포용적 힘이 돼야 한다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의 SDG 12(지속가능한 생산) 원칙을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법적으로 강제하는 메커니즘이다. 

나아가 EU CSDDD는 원청 대기업에게 협력 중소기업(SME)의 자원과 제약 조건을 고려해 역량 강화, 교육, 나아가 직접적인 금융 지원까지 비례적으로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대기업이 수립한 ‘협력사 행동규범’이 중소기업에게 또 다른 행정적 규제 부담이나 책임 전가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대·중소기업 상생형 예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함을 뜻한다. 

2026년 한국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관계수급인(하청) 근로자의 사고사망 현황을 도급인의 공시 항목에 필수적으로 포함하도록 규정해 가치사슬 책임의 범위를 확장했다. 원청이 협력사에 위험을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이주화’를 멈추고 공동 위험성평가와 생활임금(Living Wage) 보장이라는 실질적인 상생공영(相生共榮)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ESG 경영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완성된다.


SDG뉴스 = 이창언 우석대 교수/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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